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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형 엔지니어가 필요한 이유 🛠️– 500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산팀의 하루 👨🏻‍🔧

 안정형 엔지니어가 필요한 이유 🛠️ – 500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산팀의 하루 👨🏻‍🔧 

“연애는 안정형이랑”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상형은 감정 기복 없이 중심을 잘 잡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안정형’이라는 말, 사실은 연애보다 산업 현장에서 훨씬 더 절실한 가치입니다. 특히 고온·고압의 반응과 유해화학물질이 오가는 프리커서 생산 현장에서는  단 0.1g의 오차, 1℃의 온도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정밀하게 데이터를 해석하고 공정을 예측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안정형 인재가 꼭 필요합니다.

안녕하세요, SK머티리얼즈 취재기자 윤하영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SK트리켐 우형욱 PL님과 함께 생산 엔지니어가 프리커서 생산 현장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지, 그리고 생산 엔지니어로서 어떤 고민과 전략이 오가는지를 솔직하게 나눠봤습니다.

SK Careers Editor 21기 윤하영

CE: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우형욱 PL: 반갑습니다. 저는 SK트리켐 생산2팀에서 프리커서 제품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우형욱 PL입니다.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제품 합성부터 정제, 품질 관리까지 공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어요.

CE: 화학공학을 전공하셨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지금의 진로를 계획하신 건가요?

우형욱 PL: 대학 시절에는 전공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죠. 화공과를 나왔으니 화학 계열 기업에 가야지, 그런 식으로요. 그런데 막상 여러 산업을 경험해보니, 중요한 건 전공 자체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더라고요.

CE: 지금 맡고 계신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인가요?

우형욱 PL: 저희 팀에서는 총 6~7종의 프리커서 제품을 생산하는데, 그중 네 가지를 맡고 있어요. 일부는 원료를 직접 합성하고 정제해서 출하하고, 또 일부는 외부에서 받은 크루드(Crude) 제품을 정제하는 방식입니다.

* 크루드(Crude) 제품: 정제되지 않은 원료 상태로 불순물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고순도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별도의 정제 공정을 필요로 하는 제품

CE: 일반적으로 ‘생산’이라고 하면 기계 조작과 설비를 떠올리기 쉬운데, 실무에서는 어떤가요?

우형욱 PL: 단순한 운전보다, 공정을 어떻게 설계하고 조율하느냐가 핵심이에요. 생산 계획에 맞춰 최적의 조건을 설정하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분석해 재발을 막는 역할까지 담당하죠. 수율, 원가, 품질 등 여러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고요.

CE: 말씀을 듣다 보니, 생산 엔지니어라는 직무가 꽤 전략적인 포지션이네요.

우형욱 PL: 그렇죠. 저는 생산 엔지니어를 ‘조율자’ 혹은 ‘설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현장의 여러 변수들을 조정하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전공 지식은 그 기반일 뿐이고, 실무에서는 문제를 읽고 해석하는 감각이 훨씬 중요합니다.

CE: 생산 엔지니어라면 매일 현장에서 뛰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실제로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우형욱 PL: 딱히 ‘하루에 몇 번’ 이렇게 정해진 건 없지만, 출근하면 무조건 한 번은 현장 컨트롤룸(DCS*)에 들러요. 그리고 이슈 생기면 또 가야 하니까… 하루에 세네 번은 기본으로 왔다 갔다 하게 되죠.

그 외에 진짜 플랜트 안, 그러니까 밸브 돌리고 배관 보이는 그 안쪽까지는 하루 두 번쯤 들어가는 것 같아요. 문제 생기면 점검도 하고 개선할 포인트도 직접 확인해야 하니까요.

(*DCS: Distributed Control System. 플랜트 설비를 통합 제어하는 시스템

CE: 아무래도 현장 인력과의 소통도 중요한 일이겠어요.

우형욱 PL: 그게 정말 중요해요. 아무리 데이터가 좋아도, 결국엔 사람 일이라. 저희 현장에 계신 분들과도 틈틈이 이야기를 나눠야 해요. 공정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일상 얘기도 나누고, 농담도 던지고 그래야 필요할 때 서로 잘 맞춰가거든요.

CE: 소통뿐 아니라 공정 자체를 개선하는 일도 하셨다고요?

우형욱 PL: 네, 기존에는 단증류 방식만 사용하던 공정을 개선했어요. 단증류는 말그대로 한 번 끓여서 증류하는 방식인데, 수율이 낮고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정제 과정에 ‘리플럭스’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쉽게 말하면 증류된 기체 일부를 다시 되돌려서 반복적으로 정제하는 방식이에요. 비점 차이를 더 뚜렷하게 활용해서 효율을 높이는 거죠. 덕분에 수율도 올라가고, 품질도 안정됐어요. 실제로 고객사에서 불만을 제기했던 부분도 이걸로 해결됐고요.

CE: 단순히 품질만이 아니라, 원가 절감에도 기여하신 셈이네요?

우형욱 PL: 정확해요. 이게 저희 회사의 특징 중 하나인데, 제품 원가에서 원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해요. 보통은 30~40% 정도인데, 저희는 80~90%까지 가는 제품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수율이 중요합니다. 어떻게든 원료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올려야 해요. 리플럭스 개선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죠. 제가 회사 와서 제일 열심히 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CE: PL님, 생산 엔지니어로서 공정을 운영하는 일 외에 중요한 업무가 있다면 어떤 걸 꼽으실 수 있을까요?

우형욱 PL: 아무래도 PSM이 가장 핵심적이에요. 이 회사의 근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변화와 개선의 시작이 PSM에서 출발하거든요. PSM의 약자를 알고 계신가요?

CE: 프로세스, 세이프티, 매니지먼트. 맞나요?

우형욱 PL: 맞습니다. 예를 들어 공정에 밸브 하나를 추가한다고 해도, 바로 시공에 들어갈 수는 없어요. 변경관리위원회’를 열고 각 분야 담당자들이 모여 위험성을 검토해요. 이게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필요한 보완 사항은 없는지 다 확인한 다음에야 진행할 수 있죠.

CE: 검토 단계가 꽤 정교하게 진행되는군요.

우형욱 PL: 네. 작업 전에는 반드시 작업 허가서를 받아야 하고요. 작업자가 누구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할지까지 명확히 정리돼야 해요. 이 모든 절차가 결국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CE: 그렇다면 정기적인 심사도 있나요?

우형욱 PL: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2년에 한 번씩 PSM 심사를 받고, 평가 결과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요. 좋은 등급을 받으면 다음 심사까지 주기가 늘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더욱 자주 관리받게 돼요. 이 제도 덕분에 회사 전체가 지속적으로 안전에 집중할 수 있죠.

CE: 신입 시절엔 이런 업무가 조금 낯설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우형욱 PL: 맞아요. 처음엔 문서 작업이 많고 까다롭게 느껴졌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모든 게 결국은 안전을 위한 기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특히 프리커서 같은 고위험 물질을 다루는 환경에선 이런 시스템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변경된 내용은 반드시 현장에 공유해야 합니다. 위험성 평가 내용도 교육을 진행하고요. 제도나 절차만 잘 갖춰졌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제 작업자들과 같은 인식을 공유하는 게 중요합니다.

CE: 생산 엔지니어 업무 중 원가 관리도 중요한 영역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원가를 최적화하시나요?

우형욱 PL: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수율’을 가장 큰 기준으로 보고 있어요. 예를 들어 90의 원료를 넣고 100이 나오면, 수율이 오른 거죠. 같은 원료로 더 많이,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면 그게 곧 원가 절감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CE: 다른 회사들은 전기나 스팀처럼 에너지 쪽 원단위를 줄이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우형욱 PL: 네, 맞습니다. 그런데 SK트리켐의 경우 프리커서를 제조하기 때문에 원료 자체가 고가입니다. 원료비가 제품 원가의 80~90%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수율 향상만큼 효과적인 전략이 없는 거죠.

CE: 공정 운영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나요?

우형욱 PL: 공정 타입 자체가 달라요. 저희는 '배치(batch) 공정'이에요. 쉽게 말해, 한 번 한 번 끊어서 만드는 구조죠. 드럼 하나하나를 직접 넣고, 정제하고,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식이니까요. 반면 '연속 공정'은 한 번 돌리면 쭉 가요. 설정해두면 펌프를 통해 계속 돌아가는 구조라 스케줄링이 거의 필요 없죠.

CE: 그럼 배치 공정은 스케줄 관리가 필수겠네요.

우형욱 PL: 맞아요. 합성, 정제하고 포장하는 단계가 따로 있다 보니까, 스케줄링을 잘못하면 어느 순간 병목이 생겨요. 공정 사이에서 막히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서 버틀넥 없이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해야 해요.

CE: 그런 공정을 선택한 이유도 반도체 소재 특성 때문인가요?

우형욱 PL: 네. 반도체용 소재는 99.999% 이상의 고순도가 필요해요. 연속 운전으로는 그런 품질 유지가 어렵고, 배치 방식이 오히려 더 정밀하게 품질을 관리할 수 있어요. 반도체 공정 자체가 워낙 예민하니까요.

CE: 생산량은 줄어들 수 있지만, 품질과 신뢰를 택한 거군요.

우형욱 PL: 그렇죠, 단가도 많이 차이나요. 석유화학 제품은 톤당 몇 백만 원 하는 반면, 저희는 그램당 가격이 붙어요. 반도체 소재 기업인 SK머티리얼즈 계열이 계속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CE: 생산기술 엔지니어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형욱 PL: 전공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화공과를 나와도 내가 어디서, 어떻게 이 지식을 쓰게 될지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교수님들도 사실 그걸 다 알려주진 못하거든요.

CE: 단순히 스펙 쌓는 걸 넘어서, 적용할 수 있는 맥락을 이해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우형욱 PL: 맞아요. 그걸 알면 공부 방향도 바뀌죠. 예전엔 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 이런 얘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양한 분야를 넓게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생산 엔지니어만 해도 원가관리, 안전보건, 설비 설계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거든요.

CE: 정말 멀티플레이어가 필요한 자리네요.

우형욱 PL: 그렇죠. 그래서 ‘이 분야는 내 일이 아니야’ 하는 생각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좋겠어요. 특히 산업군에 따라 특성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적응이 쉬워집니다.

CE: 요즘엔 AI나 데이터 툴에 대한 이해도 많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우형욱 PL: AI·DT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에요. 꼭 파이썬 코딩을 직접 짜지 않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어떤 도구로 해결할 수 있는지 정도는 익혀두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업무에 그런 기술을 접목해서 효율을 높이는 경우도 많고요.

CE: 그럼 전공을 산업과 연결해보는 감각, 그리고 AI·DT를 포함한 새로운 도구에 대한 감각, 두 가지 역량이 핵심이겠네요.

우형욱 PL: 맞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딱 한 분야만 깊이 파기보다는 넓고 얕더라도 여러 분야를 알고 있는 사람이 결국 강해요. 회사를 다니다 보면 그걸 체감하게 되실 거예요.


생산 엔지니어는, 공정을 설계하는 사람 이전에 ‘사람을 지키는 일’을 합니다.

우형욱 PL님과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안정설계였습니다. 프리커서처럼 예민한 소재를 다루는 현장에서는 작은 변화 하나도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단순한 기계 운전을 넘어서 공정 전체를 전략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예방하고, 더 나은 조건을 설계하고, 현장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하루.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제품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이뤄지는 일입니다.

“기술은 결국, 안전한 환경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는 PL님의 말씀처럼, 생산 엔지니어는 기술의 무게를 실제로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한 번의 판단이 수율을 바꾸고, 한 줄의 문서가 사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공정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하루가 얼마나 깊고 치열한지 조금이나마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소중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SK트리켐 우형욱 PL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기사에서 더욱 유익한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SK머티리얼즈 취재기자 윤하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