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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취업 선배 3인이 말하는 리얼 스토리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취업 선배 3인이 말하는 리얼 스토리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스토리는 스펙을 이길 수밖에 없다. 당신에겐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는가, 지금 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혹시 지금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혹은 주변 상황을 살피고, 환경을 탓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자신을 긍정하고, 지금 당장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은 보이는 것보다 크다.


- 책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김정태 저) 발췌

 

모두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자격증과 똑같은 경험으로는 더 이상 치열한 취업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 ‘스펙’말고 ‘스토리’를 주장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는 최근의 취업 트렌드를 통해서도 정형화된 스펙이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스토리’가 무엇일까. 남들과는 다르면서도 내가 일하고 싶은 직무로 이어지는 경험은 대체 어떻게 만들면 되는 것일까. 무조건 ‘특이한’ 경험을 해야 하는 건지, 대체 그 스토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스토리가 취업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에디터가 직접 알아보았다.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직장인 세 명의 인터뷰를 통해 그 스토리의 실체에 대해서 알아보자. 

 

SK Careers Editor 정소영

 

 

[영국 길거리에서 그림을 팔다] 

 

첫 번째로 만나볼 사람은 현재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 박웅희 씨다. 그는 학부 시절, ‘SK Careers Editor’의 모태가 된 ‘SK Story Ground’의 6기 기장으로 활동했다. 박웅희 씨는 디자이너답게 대학 시절 그림 그리기와 판매를 통해 특이한 경험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저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어요. 그러던 도중, 디자인의 본고장, 영국에서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원을 가기 전에 학부 때 영국을 더 알고 싶고, 영어도 배우고 싶어서 어학연수를 무작정 떠났어요. 그렇게 당차게 올랐던 유학 길에서 사기를 당했지 뭐예요. 영국에 가자마자 돈을 다 잃고, 당장 국내로 돌아가야 했던 최악의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부모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어요.”


그렇게 돈을 벌기로 결심한 그가 선택했던 첫 직업은 바로 ‘청소부’였다. 청소를 하다가 ‘스트릿 아티스트(Street Artist)’ 자격증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자격증을 따서 스트릿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위: 박웅희 씨의 스트릿 아티스트 자격증, 아래: 박웅희 씨가 영국에서 스트릿 아티스트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들>

 

“(실물보다) 더 잘 그려줘야 만족을 하시더라고요(웃음). 인상 깊었던 손님이 한 명 있어요. 피에로 아저씨였는데, 식당 요리사였죠. 이 아저씨한테 아저씨 사진이랑 아내 분, 그리고 아이들의 사진을 그려주는 대신, 한 달 동안 밥을 공짜로 얻어 먹었답니다. 사실 영국에 물가가 비싸서 밥 사먹기도 쉽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전 그림 장사를 진짜 생존을 위해 한 거죠. 집에 손을 벌릴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고요.”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는 간절함, 그리고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이 그를 영국의 스트릿 아티스트로 만들어준 셈이다.

 

[100명 인터뷰, 그리고 찾은 키워드 ‘강연’] 


“처음부터 100명을 인터뷰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조정현 씨는 현재 국내에서 HRD(인적 자원 개발)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의 색을 찾아주어 그들을 동기부여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HRD 담당자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는 이런 비전에 맞춰서 살고 싶어하는, ‘방향’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원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었고, 사람들과 소통의 가운데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저와 비전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가곤 했어요. 그러다가 영감들을 얻게 되어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고요. 하다 보니 이걸 그냥 넘기기엔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걸 정형화를 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죠. 어차피 하게 될 거 100인 채워보자 마음먹고 100명까지 만나게 되었어요.”

 
<조정현 씨가 HR 관련 뉴욕 EAP 기관들을 방문 했었을 때 사진(좌), 조정현 씨의 강연 사진(우)>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뽑은 키워드는 ‘강의’ 였습니다. 저는 일을 ‘동사형 꿈’이라고 생각을 하고, 직업을 가지는 것을 ‘명사형 꿈’이라고 말해요. 예를 들어 동사형 꿈은 ‘나는 사람들의 색을 찾아주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 강의를 하는 것이다.’ 같이 문장으로 풀어서 쓸 수 있는 꿈이에요. 그런데 직업은 달라요. ‘강사’, ‘HRD’ 이렇게 명사로 표현되죠. 저는 동사형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대학생으로서 이 두 가지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했어요. 고민 끝에, 사람들을 동기부여 해주면서 기업 취업에도 초점을 맞추려면 제 이야기를 하는 ‘강의’가 최적의 방안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죠. 대학생이지만 저만의 콘텐츠로 강의를 하는 것이 제가 인터뷰와 고민 끝에 찾은, 제 꿈을 실현시킬 방법 중 하나였어요.”


조정현 씨는 학부 때만 70회가 넘는 강의를 진행했다. 작게는 PPT 만드는 법, 발표 잘하는 방법, 나중에는 대학생을 상대로 브랜딩 강연을 하는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해온 그녀는, 그런 강의 활동을 하면서 그녀가 가고자 하는 분야에 필요한 스킬을 쌓아왔다. HRD담당자는 교육 과정을 운영해야 하고, 사원들이 연수에서 얻어갈 것을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에 강의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홍대 한복판에서 나 홀로 게릴라 스피치를] 

 

“지금은 못할 것 같아요
기획하는 프레젠터 전상원 씨는 이번 기사의 마지막 인터뷰이다. 스스로를 ‘Adinsenter(애딘젠터 : Advertisement + Presenter)’라고 소개하는 그는 학부 시절부터 대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프레젠터’로 유명했다. 그만큼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을 좋아하고, 강연도 많이 다니는 그는 현재 광고회사에서 AE로서 광고 기획과 제안서 제작 및 경쟁PT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학부 시절에 했었던 ‘게릴라 스피치’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그 당시엔 발표 동아리를 했었어요.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이따금씩 길거리에서 게릴라 스피치를 하기도 했죠. 하지만 다 같이 몰려가서 하는 건 쉬워요. 동료들이 호응을 해주니까요. 저는 문득 ‘혼자서’ 거리에 나가보기로 결심했어요. 넘치는 열정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어서 한 번 무모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청춘인데 가만히 있는 게 너무 아깝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뛰쳐나왔었죠.

 

당차게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서 홍대 거리로 나섰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어요. 망설이는 와중에 어느새 설치해놓은 카메라 배터리가 바닥이 나기 시작했죠. 이대로 돌아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단 위에 올라서서 게릴라 스피치를 시작했어요.”

 



위의 것은 3년 전, 전상원 씨가 혼자 홍대에 삼각대와 캠코더를 들고 나가 촬영했던 실제 영상이다. 강연을 하고 싶다고 길거리에서 외치고 난 6개월 뒤에 그는 당진고등학교에서 첫 강연을 하게 됐다, 그 이후로 대학생활& PT 등의 다양한 주제로 중,고 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서 대학생 강연가로서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상원 씨의 첫 강연이었던 당진고등학교 강연 사진>

 
그렇다면 이런 스토리들이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회사에서 이런 스토리가 도움이 되기도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자.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자기소개서 작성에 큰 도움]
철저한 사전 준비와, 마케팅적 감각으로 준비한 박웅희 씨의 그림 판매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참 잘 팔릴 때는 하루에 100만 원 넘게 그림을 팔았다고. 


“무작정 아무 길에 나가서 아무 그림을 판 게 아니에요. 판매를 할 수 있는 지점들을 다 돌면서 2주 동안 유동인구나 연령층을 파악했죠.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시장 조사’를 미리 한 셈이에요. 어떻게 보면 제 모든 역량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경험이었죠. 여기서 원가, 시장조사, 상품 분석, 그리고 제 핵심 역량인 디자인 실력이 어떻게 발휘가 되었는지도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 심지어 해외에서 한 경험 이라서 더 특이해 보였죠.

 
그림을 팔면서 언젠가 ‘초상화’ 말고 ‘스프레이 페인팅’으로 바꿔보는 시도를 했었어요. 그랬더니 손님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스프레이 불쇼(?)도 해줬어요. 장사엔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했던 것이었죠(웃음). 작은 회사의 로고도 만들어주고, 애니메이션, 브랜딩 등 그곳에서 연이 닿은 사람들에게 디자인 제작물을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그곳에서 제가 하고 싶은 디자인 공부도 계속 했었어요.”


박웅희 씨는 그때의 경험들을 정리해서 한눈에 보여줄 수 있도록 책을 만들기도 했다. 디자이너라서 자신이 발휘할 수 있었던 역량들을 또 다시 디자인이라는 자신의 능력으로 빛나게 만든 셈이다. 



<박웅희 씨가 영국 다녀와서 만들었던 영국 활동기(좌)와 포트폴리오를 들고 있는 박웅희 씨(우)>

 

“그때는 몰랐지만, 취업할 때 이 경험과 포트폴리오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드로잉 실력, 마케팅, 사업 감각 모두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요. 이걸 해보니까 역시 자기소개서에는 사업을 해봤다는 말이 가장 먹히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웃음).”

 

[취업 준비부터 삶의 방향성까지 얻은 인터뷰]
100명을 인터뷰하고,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면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환상을 많이 깼어요.”

그녀는 강의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인터뷰를 통해서, 그리고 직접 강연을 하면서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직업에 대한 환상을 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얻는 것도 정말 많았어요. 그때 얻었던 것들을 취업할 때 자기소개서에 굉장히 많이 녹여낼 수 있었고. 취업뿐만 아니라,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답을 찾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었죠.

 
또, 인터뷰를 통해서 ‘회사 분위기’도 알게 되었어요. 회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회사마다 분위기나 사용하는 단어가 묘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어느 회사는 간결한 것을 좋아하고, 어느 회사는 영어 단어를 많이 쓴다는 등, 그런 장단점들이 저도 모르게 인터뷰를 통해 보였던 것이지요. 그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하나를 얻으러 갔는데 둘, 셋 심지어 열까지 얻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네요.” 
 


“그리고 저는 인터뷰를 하는 그 순간을 제 ‘성찰 포인트’로 삼았어요. ‘이 만남이 나한테 어떤 도움이 될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까? 지금 나누는 대화와 차 한잔이 앞으로 어떤 인연으로 발견 될 것인가’ 하는 생각 들이었죠. 이런 것들에 제가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인터뷰로 얻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열정 폭발의 시작점, 그 후로 나는 더욱 도전했다]
“게릴라 스피치는 어떻게 보면 제게 훈장 같은 거예요. ‘이렇게 도전해봤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저만의 경험 이잖아요.”


전상원 씨는 자신의 도전 이후에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도 그때의 저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경험이 제겐 열정의 불씨를 가져다 주었죠. 그 후엔 친구들을 만나서 스피치 영상을 보여 주며 ‘그동안 답답했는데 게릴라 스피치를 통해 나는 열정을 되찾았고,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6개월 뒤에 당진고등학교에서 첫 강연을 하게 되었죠. 모든 게 제가 행동하고 움직여서 생긴 변화였기에, 그 뒤로 스스로 움직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계속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상원 씨의 수 많은 프레젠테이션 경험을 보여주는 사진들>

 

 “이런 경험들이 포트폴리오가 되어서 나중에 엄청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 면접 볼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면접 볼 때 제가 썼던 기획서랑 PT했던 영상들, 게릴라 스피치 했던 영상들을 보냈었는데 이걸 좋게 봐주셨다고 나중에 알려주시더라고요. 그게 힘이 많이 되었어요.”

 
이런 특별한 경험들을 누구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도전을 망설이는 수 많은 청춘들에게 이들은 어떤 응원의 말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하면 ‘는다’!]
박웅희 씨는 최동훈 감독의 말을 인용하며 응원의 말을 전했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하면 는다’예요. 걱정만 잔뜩 하기 보다는 일단 해보고, 부딪히면서 생각하는 거죠. 저도 도전을 망설일 때가 많아요. 하지만 무엇을 시도하던지 각자의 인생은 소중하고, 각자의 스토리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열심히 도전한 것이라면 그 또한 가치가 있는 것이에요. 실패해도 기죽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나에게 맞는 도전을 시도하라]
조정현 씨는 도전에 대한 한 마디를 하기 전에 ‘제3자 입장에서 취업 시장에서 자신이 가치가 있는지를 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우선 강조했다.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질문은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자신에 대해서 우선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비전이 뚜렷한 사람이었지만 이 비전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굉장히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한다고 똑같이 따라 하는 방향성 없는 준비는 아니라고 생각 해서 대학생으로서 내 비전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취업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찾았어요.

 
제 예전 강의 자료를 보면 스스로를 ‘조정현 학(學)’ 박사라고 소개하는 멘트를 썼을 정도로 저는 제 자신에 대해 파악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만큼 대학생 때 자신에 대한 심층적인 탐색을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조정현 씨는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들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제본한 후, HRD 협회에서 하는 행사에 혼자 찾아가 현직자들에게 나눠주기 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그녀의 말엔 그때의 열정이 가져다 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신이 담겨있었다.


“보통 취업 정보 얻으려고 대부분 포털 사이트나 검색에만 의지 하잖아요. 하지만 그곳엔 정말로 취업의 정답은 없어요. 진짜 취업의 왕도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저처럼 들이대라는 뜻이 아니라, 방법은 결국 자신이 찾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정말 그게 하고 싶으면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던져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떨어지면 어때요. 사람들이 무시하면 어때요. 죄 짓는 게 아니잖아요. 이런 작은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서 저를 만들어낸 거예요.


저는 학벌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솔직히 평범하고 평범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대안 없는 1등 찾기는 하지 않았어요. 여러분도 우선 자신에게 질문해 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요.”


 
“그리고 2AM조권 씨랑 인맥 닿는 사람 있으면 말해주세요.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조권 씨와 강연 콘서트를 열어보는 것이거든요(웃음).”

 

[Moonshot thinking! 남들과 다르게 도전하라]
전상원 씨는 청춘들에게 주는 도전의 메시지로 구글의 기업혁신정신인 ‘Moonshot thinking’을 언급했다.

 

“90%는 직장인이 스스로 일하고 있는 업에 만족을 못한다고 해요. 심지어 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막상 직장에서 일해보니 힘들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직장인들 중에서 행복한 축에 속한 것 같아요. 지금 행복한 이유는 아직도 발칙한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학부 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수상한 오빠들의 미심쩍은 상담소’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 몇 명과 지금은 ‘수상한 오빠들’이라는 작은 단체를 만들었고요. ‘수상한 오빠들’과 함께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더 활기찬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전상원 씨가 활동하고 있는 ‘수상한 오빠들’(좌)와 ‘수상한 오빠들’의 최근의 프로젝트였던 ‘엄마와 데이트’(우)>


“이 ‘수상한 오빠들’의 슬로건이 바로 이 ‘Moonshot thinking’ 즉 달을 향해 쏘는 생각이에요. 달에 간다는 상상을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보통 일부러 하진 않아요. 그 정도로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고 놀랄 만한 생각을 하고 실행하고 싶어요. 저는 그런 Moonshot thinking을 가지고 사는 직장인이고 싶어요. 계속해서 도전하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상상하고 실행해보세요. 도전을 향한 열정은 당신의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들 테니까요.”
 

 

세 명의 스토리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정말 특별한 경험 하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는가? 아니다. ‘대학생이기에 도전해 보자’,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크고 작은 경험들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어주는 ‘발화점’ 역할을 해준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간 그들의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이러한 계기들을 통해  ‘정형화된 스펙’보다는 ‘실무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냈기에 그들은 치열한 취업시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취업’ 만을 위해 무조건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못한 채 남들을 따라가기에 급급 한가? 당신의 도전은 지금 어떤 방향과 열정으로 무장되어 있는가. 이들과 똑같은 방법을 따라 준비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방법이 왕도라는 말도 아니다. 이들과는 또 다른 당신만의 방향을 가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연결고리를 찾아간다면, 당신의 스토리도 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당신도 망설이지만 말고, 도전하고 끊임 없이 기회를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