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반도체 소재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셨던 분들은 실리콘 웨이퍼나 포토레지스트처럼 생김새가 직관적인 재료들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OLED 디스플레이의 푸른 빛을 살리는 유기화합물, 바로 '블루 도판트(Blue Dopant)'야말로 그 존재감 이상의 정교함을 지닌 핵심 소재입니다.
그리고 이 정교한 소재를 고객의 공정 위에 ‘실제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술을 읽고, 공정을 해석하며, 고객과 연구소 사이를 오가는 커뮤니케이터, 바로 SK머티리얼즈 JNC의 기술영업팀입니다.
사실 ‘영업’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전통적인 이미지는 카탈로그를 손에 들고 고객사를 방문하거나, 가격과 납기를 조율하는 전형적인 세일즈 역할이였죠. 하지만 기술영업은 그 공식에서 벗어납니다. ‘기술’ 영업팀이 다루는 건 상품이 아니라, 기술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SK머티리얼즈 JNC의 기술영업팀은 블루 도판트와 같은 고난이도 소재의 특성을 분석하고, 고객의 라인 조건에 맞춰 제안 스펙을 설계하며, R&D, 품질, 생산, 심지어 일본 JNC와의 협업까지 조율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식으로 협업하고, 어떤 고민을 할까요?
안녕하세요! SK머티리얼즈 취재기자 윤하영입니다. 오늘은 SK머티리얼즈 JNC 기술영업팀 정기필PL님의 하루를 따라가며 ‘기술을 설득하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SK Careers Editor 21기 윤하영
SK머티리얼즈 JNC 기술영업팀의 하루는 단순한 루틴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출장이 없는 날이면 가장 먼저 이메일과 일정표를 확인합니다. 해외 고객사나 일본 파트너사로부터 밤사이 도착한 메시지들이 하루 업무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죠. 어떤 샘플을 언제까지 보내야 하는지, 오늘 투입될 개발 샘플은 납기 일정에 맞는지, 고객사 요청이 쌓인 상황은 어떤지... 하나하나 체크하며 하루의 퍼즐을 맞춰나갑니다.
출장이 있는 날이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고객사 현장에 상주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사무실에 머무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즉흥적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기술영업이 '일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변수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옵니다. 양산과 개발의 경계에서 실시간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판단을 내리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기술영업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전략적으로 놓이는 '브릿지'입니다. 고객과 개발팀, 스펙과 납기, 현실과 기대 사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사람이죠. 고객의 요청은 종종 정해진 기술 사양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디스플레이 소재처럼 고사양이 요구되는 제품군에서는 고객사가 애초에 다소 높게 설정한 기준을 제시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영업은 이러한 요청을 무작정 수용하기보다는 실제 기술 개발 일정과 역량을 고려해 최적의 수준에서 조율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율은 내부 R&D 조직과의 협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기술영업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팀이 기술적 대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조건을 분석하고 구조화하여 공유합니다. 같은 기술이라도 고객마다 사용하는 용어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고객의 언어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내부에 정확히 전달하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이런 조율 과정에서 기술영업이 자주 마주하는 현실적 고민은 바로 '품질이냐, 납기냐'의 선택입니다. 특히 소재를 고객이 직접 테스트해야 하는 개발 단계에서는 아무리 완벽한 품질이라도 시기를 놓치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럴 땐 빠르게 샘플을 전달해 테스트를 돕는 것이 우선입니다. 반면 양산 단계에 접어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수천 수만 개의 제품에 동일한 조건으로 투입되는 만큼, 품질이야말로 고객 신뢰를 지키는 핵심 기준입니다. 일정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기술적 완성도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기술영업은 이렇게 단계별 우선순위를 명확히 구분하며, 고객의 기대와 내부의 가능성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답을 설계합니다.
기술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루틴 중 하나는 바로 ‘공부’입니다. 단순히 제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기술을 이해하고 고객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일까지 맡아야 하니까요. 신소재, 공정 조건, 고객사별 용어까지. 실무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정보는 전공 지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제 업무에서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엔지니어를 쫓아다니며 질문하고, 고객과의 미팅에서 피드백을 듣는 방식으로 기술을 익혀갑니다. 내부적으로는 신입 사원에게 멘토링을 통해 기술과 언어를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돕고 있고, SK의 사내 온라인 학습 플랫폼인 ‘My SUNI’를 통해 업계 동향이나 기술 트렌드를 학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자들은 “가장 빠른 학습은 고객 미팅 현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고객이 던지는 한 문장, 기사 한 줄이 사내 자료보다 먼저 시장을 움직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입니다. 만든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객의 입장에서 자료를 구성하고 용어를 조율하며, 무엇을 강조할지 미리 고민합니다. ‘창의적인 설명’보다는 ‘정확한 번역과 해석’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기술영업은 모른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이해된다는 피드백을 듣기 위해 끊임없이 다듬는 직무입니다. 설득은 기술의 깊이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결국 사람의 언어로 닿아야 완성됩니다.
기술영업은 고객과 내부를 잇는 다리인 동시에 국가와 문화를 넘나드는 연결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과 긴밀히 협업하는 SK머티리얼즈 JNC의 기술영업 직무는, 단순한 제품 전달이 아닌 글로벌 감각이 요구되는 역할입니다. SK머티리얼즈 JNC는 일본 JNC와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유지해왔고, 기술영업은 이 둘 사이에서 핵심적인 조율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술 사양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과 한국 사이의 업무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중재하는 일이야말로 실전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고객사의 요청으로 철야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일본 측 협력사에게 그 필요성과 시급함을 납득시키는 일이 먼저입니다. 일본은 오버타임과 휴일 근무에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 무턱대고 요청하는 것은 오히려 신뢰를 해칠 수 있습니다. 이럴 땐 단순히 요청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해당 이슈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수차례에 걸쳐 설명하고,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율안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러한 유연함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상호 신뢰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이해, 그리고 실무적 공감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합니다. 기술영업이 기술과 제품을 파는 사람이라기보다 사람과 문화를 연결하는 브릿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 현지와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일도 기술영업의 몫입니다. 실제로 일본 본사에 주기적으로 출장을 가서 엔지니어들과 회의를 함께하고, 고객사와 직접 얼굴을 맞대며 기술 사양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일정 조율이 아니라 웹 회의로만 보던 상대방을 실제로 만나 서로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현장에서 오가는 짧은 인사 한 마디, 회의 후의 식사 자리가 때론 메일 몇 통보다 더 많은 것을 해결해줍니다.
기술영업의 진가는 ‘결과’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수년간 공들인 프로젝트가 고객사의 양산 라인에 탑재되고, 그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되는 순간. 그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업무 성과를 넘어섭니다. “아, 그래서 이 일을 하는구나”라는 묵직한 실감이 찾아옵니다.
한 예로, 2~3년에 걸쳐 고객사와 함께 개발한 고기능 소재가 실제로 채택되어 스마트폰에 적용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술 스펙부터 공정 적합성까지 수없이 조율하고 테스트하며 수많은 엔지니어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얻은 성과였습니다. 해당 재료가 제품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친구들에게 당당히 “이건 내가 관여한 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SK머티리얼즈 JNC로 합병되며 출범 초기에는 6명 남짓이던 팀이 100명 규모로 성장하고, 프로세스가 체계화되어 조직 전반이 흑자로 전환된 과정도 빠질 수 없습니다. 기술영업은 단순히 고객 대응만 하는 직무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조직의 판을 짜고, 사람을 모으고, 체계를 구축하는 일에도 중심이 되는 자리입니다.
한 줄의 기술 설명이 고객사의 결정을 바꾸고, 하나의 소재 제안이 시장을 움직이는 경험. 그것이 기술영업이 가진 무게이자,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수많은 조율과 협업의 끝에서, 제품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자신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이 직무만의 큰 보람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PL님께 던진 ‘기술영업에 가장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일입니다.” 기술은 배우면 됩니다. 데이터도 익히면 됩니다. 아무리 외국어 역량이 뛰어나다 해도, 결국은 비즈니스 용어로 새로 습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죠. 고객과의 신뢰, 동료들과의 협력, 협력사와의 파트너십은 ‘좋은 사람’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기술영업은 정보를 주고받는 직무가 아니라 믿음을 주고받는 직무입니다.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 돌려줄 수 있어야 하고, 먼저 다가가면 언젠가는 함께 걷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하루는 조용히 닫히지만 오늘 이곳에서 마주한 시간은 단순한 인터뷰 그 이상이었습니다.
사실 PL님 역시 처음부터 기술영업이라는 직무가 익숙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조금은 부담스러웠고, 기술 용어 하나에도 매번 다시 익숙해져야 했다고요. 하지만 그 낯설음 앞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채워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자리. 관계를 설계하고 기술을 설명하며, 보이지 않는 균형을 세우는 하루하루의 무게는 결국 커리어의 깊이가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직은 선택이 두렵고 방향이 흐릿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또 누군가에게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좌표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소중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SK머티리얼즈 JNC 정기필 PL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기사에서 더욱 유익한 정보로 찾아뵙겠습니다.